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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0회 특별기획전 ‘감식안(鑑識眼), 창조와 모방의 경계’ 개최(2021.6.28. ~ 2022.3.31.)
- 감식안鑑識眼의 확장, 창조와 모방의 경계 주제로 기획전 20세기 한국 최고의 감식안 오세창을 통한 감정의 기준 제시 근대서화·도자 등 모방의 다양한 경계 밝혀 성균관대학교박물관(관장 조환)은 6월 28일(월)부터 ‘감식안-창조와 모방의 경계’라는 주제로 제40회 기획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 감정의 문을 연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에 주목하여 그가 최고의 감식안을 갖추게 되는 과정과 당시 예술계의 권위자들과의 교유관계를 통해 집단지성이라는 근대적 감식의 기준을 마련한 사례를 기반으로, 현재 모두에게 신뢰 가능한 감정 기준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세계적으로 미술품은 보석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 이 때문에 소더비․크리스티와 같은 경매회사들은 해당 분야의 세계 최고 전문가들의 신뢰받을 수 있는 감정에 근거하여 그 가치를 평가한다. 한국미술계는 보다 높은 한류의 하나로 한국 미술의 세계화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한국의 미술이 글로벌화에 이르기 위해서 선결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는 이중섭, 천경자, 이우환 등의 작품에 대한 진위 논란에 대한 권위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여야 한다. 20세기 초 최고의 서예가로 불린 성당(惺堂) 김돈희(金敦熙 1871-1936)는 오세창에게 ‘작여시관(作如是觀)’이라는 글귀를 선물했다. 작여시관은 ‘오세창과 같은 감식안으로 작품을 보라’라는 뜻이다. 이는 오세창이 당시 최고의 감정가로 평가받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오세창은 작품을 볼 때, 그림, 글씨, 낙관과 같은 작품의 외형뿐만 아니라 작가의 창작 의도, 작품 및 작가와 관련한 배경 지식 같은 인문학적인 이해 등을 토대로 감정했다. 또한 그는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판단하였다.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1962)이 한국 서화의 최고 수집가가 된 것은 오세창의 이러한 감식안에 따랐기 때문이다. 서구의 모방과 다른, 한국적 특수성을 밝히는 전시 어떤 사물의 가치나 진위 따위를 구별하여 알아내는 눈을 우리는 감식안(鑑識眼)이라고 부른다. 이번 전시는 위작 여부를 판단하는 ‘진위 감정(authentication)’을 떠나, 가치평가에 대한 시야를 넓히기 위한 시도의 하나로 ‘창작과 모방의 경계’를 부제로 삼아 모방의 미학적·시대적·조형적 가치를 조망한다. 이 전시에서는 한국미술에서의 모방을 재인식하기 위해 모방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제시하고, 창조의 현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근대 미술품 감식의 선구인 위창 오세창의 생애를 조망하고, 그의 교우관계와 사승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을 통해 한국 서화계의 흐름을 창조와 모방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한다. 나아가 한국 근대도자에서의 복고취향을 통해 모방·전승·창작에 대한 시대인식까지 확장해 살펴본다. 우리는 왜 “위창 오세창과 근묵”에 주목해야 하는가. 현재 우리가 근묵과 오세창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건희 전 삼성회장의 미술품 기증 등을 둘러싸고 진행된 수많은 논의 속에서 제대로 된 근대미술의 감식안을 먼저 확립해야하기 때문이다. 50대의 오세창은 수장가로서 <근역서휘>와 <근역화휘>를 완성하면서 ‘기준작을 파악하는 안목’을 갖게 되었고, 60대의 위창은 최고의 서화가로서 ‘예술적 안목’과 함께 조선미술통사를 정리한 <근역서화징>을 통해 ‘고증학자의 안목’을 발휘하였다. 70대에는 <근역인수>의 정리를 통해 ‘과학적 기준의 안목’을 제시하면서 여러 전문가들의 안목을 결합하는 ‘집단지성의 안목’을 열어주기도 하였다. 그중 우리 박물관이 소장한 <근묵>(34책)은, 고려 정몽주부터 근현대 이도영까지 수많은 문인, 예술가들의 편지 1136점을 묶어 펴낸 것으로, 한국 문화사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이후 2009년에 영인 번역되어 5책으로 간행되었으며, 2020년에는 서울시에 의해 국가 문화재 지정 신청이 이루어졌다. 한국 미술에 등장한 다양한 모사(摹寫)·위작(僞作) 사례들 이번 전시에서는 한 작품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동양미술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모방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가지 작품을 통해 살펴본다. 조선 정조의 사위인 홍현주의 산수화를 통해 방작(仿作)의 사례를, 소정(小亭) 변관식(卞寬植, 1899-1976)의 산수화 2점을 통해 위작과 진작의 차이를 비교해본다. 또한 이름 없는 어떤 화백의 작품에 단원이 그렸다는 글귀가 새겨짐으로써, 진품이 위작으로 변하는 경우도 살펴볼 것이다. 근대 한국도자의 복고취향과 다원예술가 신제현의 ‘감식안’해석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근대 한국도자의 ‘모방양식’을 조망한다. 일제강점기 한국 근대도자의 형성과정에서 자리한 복고문화를 이전 시대의 다양한 사례들 속에서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경제적으로 생산과 소비의 주된 주체가 된 당대인들에 맞게 모방, 재현된 고려청자·조선백자를 진품, 재연작, 위작 등과 더불어 제시한다. 나아가 일제강점기 긍정적 복고와 일본적 오리엔탈리즘이 반영된 다층의 과정 속에서 청자재연 열풍을 비롯한 한국전통 도자에 반영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1889~1961)의 민예론民藝論, 이른바 일본적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한다. 이 모든 내용을 조망한 다원예술가 신제현의 ‘미디어 설치’작품은 안목감정에 대한 오도된 인식과 더불어, 감식안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다양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전시관람 문의 및 예약 ☎760-1216, 1322, 주말, 공휴일 휴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전시관람은 예약제로 진행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참조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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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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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보도자료] 근대 서예가 오세창의 서첩 「근묵」, 조선시대 불화 및 불상 2건도 각각 보물 지정
-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종묘 신실에 봉안되어 전승된 「조선왕조 어보・어책・교명(朝鮮王朝 御寶・御冊・敎命)」을 비롯해 「근묵(槿墨)」, 「아미타여래구존도(阿彌陀如來九尊圖)」, 「순천 동화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順天 桐華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등 서첩 및 조선시대 불화, 불상 총 4건에 대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하였다. 중략 「근묵」은 근대의 저명한 서예가이자 서화 감식가였던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이 1943년 80세의 나이에 엮은 서첩으로, 가문의 8대에 걸친 수집품의 토대 위에 오세창의 감식안이 더해진 결과물이다. 정몽주(鄭夢周, 1337~1392)에서 이도영(李道榮, 1884~1933)에 이르기까지 약 600여 년에 걸친 1,136명의 필적 등 국내 최대 분량이 수록되어 있다. 첩장본(帖裝本)의 서첩 34책과 선장본(線裝本)의 목록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 감식가: 어떤 사물의 가치나 진위 따위를 구별하여 판단하는 사람 * 첩장본: 길게 이은 종이를 옆으로 병풍처럼 접고 앞뒤로 따로 표지를 붙인 형태로 만든 책 * 선장본: 인쇄된 면이 밖으로 나오도록 종이의 가운데를 접고 여러 장을 모아 앞뒤로 표지를 대고 끈으로 묶는 형태로 만든 책 서첩 34책은 필적의 크기에 따라 양면 또는 단면에 1점씩 수록하였고, 오른쪽 첨지(添紙)에는 이를 쓴 사람의 이름, 생몰연대 등을 적어 놓았다. 서첩 제1책의 표지에는 전서(篆書)로 쓴 ‘근묵(槿墨)’이라는 제목에 ‘팔십위(八十葦)’라는 문구가 쓰여 있으며 목록 1책에는 글씨를 쓴 사람의 성명(姓名)・자호(字號)・향관(鄕貫)・시대(時代)・직업(職業)・계통(係統) 등을 기록하였다. * 첨지: 책에 무엇인가를 표시하려고 붙이는 쪽지 * 전서: 한자 서체의 하나로 진(秦)나라 이사(李斯)가 만든 전자(篆字) 모양으로 쓰는 서체 * 자호: 성인이 된 뒤 이름 대신 부르는 것으로 자는 품성과 관련된 글자를 써서 짓고, 호는 취미나 인생관 등을 반영하여 지었음 * 향관: 고향 ‘근묵’은 수록된 필적의 시대적 분포가 고려 말에서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고, 쓴 사람의 신분도 국왕에서 중인, 승려 등에 이르며 그 범위가 폭넓다. 또한 수록된 필적의 문체 및 내용 또한 한문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고 있으며, 특히 사회 경제적 상황을 잘 담고 있는 서간문의 비중이 압도적이어서 당시의 사회상・생활상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역대 명필들의 필적이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어 각 시기에 유행하던 서풍 및 그 변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서예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현존 서첩 가운데 양과 질 양면에서 가장 우수한 서첩이라고 평가된다. 중략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조선왕조 어보・어책・교명」, 「근묵」, 「아미타여래구존도」, 「순천 동화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을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적극행정의 자세로 협조해 체계적으로 보존・활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문화재청보도자료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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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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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보도] 서첩 「근묵」, 조선시대 불화 및 불상 2건도 각각 보물 지정 예고
-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종묘 신실에 봉안되어 전승된 「조선왕조 어보・어책・교명(朝鮮王朝 御寶・御冊・敎命)」을 비롯해 「근묵(槿墨)」, 「아미타여래구존도(阿彌陀如來九尊圖)」, 「순천 동화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順天 桐華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등 서첩 및 조선시대 불화, 불상 총 4건에 대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근묵」은 근대의 저명한 서예가이자 서화 감식가였던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이 1943년 80세의 나이에 엮은 서첩으로, 가문의 8대에 걸친 수집품의 토대 위에 오세창의 감식안이 더해진 결과물이다. 정몽주(鄭夢周, 1337~1392)에서 이도영(李道榮, 1884~1933)에 이르기까지 약 600여 년에 걸친 1,136명의 필적 등 국내 최대 분량이 수록되어 있다. 첩장본(帖裝本)의 서첩 34책과 선장본(線裝本)의 목록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감식가: 어떤 사물의 가치나 진위 따위를 구별하여 판단하는 사람 *첩장본: 길게 이은 종이를 옆으로 병풍처럼 접고 앞뒤로 따로 표지를 붙인 형태로 만든 책 *선장본: 인쇄된 면이 밖으로 나오도록 종이의 가운데를 접고 여러 장을 모아 앞뒤로 표지를 대고 끈으로 묶는 형태로 만든 책 서첩 34책은 필적의 크기에 따라 양면 또는 단면에 1점씩 수록하였고, 오른쪽 첨지(添紙)에는 이를 쓴 사람의 이름, 생몰연대 등을 적어 놓았다. 서첩 제1책의 표지에는 전서(篆書)로 쓴 ‘근묵(槿墨)’이라는 제목에 ‘팔십위(八十葦)’라는 문구가 쓰여 있으며 목록 1책에는 글씨를 쓴 사람의 성명(姓名)・자호(字號)・향관(鄕貫)・시대(時代)・직업(職業)・계통(係統) 등을 기록하였다. * 첨지: 책에 무엇인가를 표시하려고 붙이는 쪽지 * 전서: 한자 서체의 하나로 진(秦)나라 이사(李斯)가 만든 전자(篆字) 모양으로 쓰는 서체 * 자호: 성인이 된 뒤 이름 대신 부르는 것으로 자는 품성과 관련된 글자를 써서 짓고, 호는 취미나 인생관 등을 반영하여 지었음 * 향관: 고향 ‘근묵’은 수록된 필적의 시대적 분포가 고려 말에서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고, 쓴 사람의 신분도 국왕에서 중인, 승려 등에 이르며 그 범위가 폭넓다. 또한 수록된 필적의 문체 및 내용 또한 한문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고 있으며, 특히 사회 경제적 상황을 잘 담고 있는 서간문의 비중이 압도적이어서 당시의 사회상・생활상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역대 명필들의 필적이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어 각 시기에 유행하던 서풍 및 그 변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서예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현존 서첩 가운데 양과 질 양면에서 가장 우수한 서첩이라고 평가되므로, 보물로 지정해 보호할 가치가 충분하다. * 전칭작: 해당 인물이 썼다고 전해지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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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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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두완벽(坡肚阮癖)’ 특별기증전 개최 (2020.9.18 ~ 2021.5.31.)
- 성대박물관 《파두완벽(坡肚阮癖)》특별전 개최 소동파의 마음과 김정희의 예술혼 검여 유희강을 오마주한 현대작가들의 법고창신(法古創新)도 눈길 성균관대학교박물관(관장 조환)이 준비한 2020년 전시의 제목은 《파두완벽(坡肚阮癖)》으로, 파두완벽은 소동파(蘇軾 東坡, 1037∼1101)의 마음과 추사 김정희(阮堂 金正喜, 1786∼1856)의 예술혼이라는 뜻으로 검여 유희강(劍如 柳熙綱, 1911∼1976)선생이 즐겨쓰신 소완재(蘇阮齋)라는 호의 뜻을 검여 선생이 스스로 풀어 쓴 구절이다. 이번 전시는 본교의 전신인 명륜전문학교 출신으로 추사 이래 최고의 명필이라고 평가 받고 있는 검여 유희강 선생님의 작품을 전시한 2019년 《검무(劍舞)》展에 이은 두 번째 기증전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파두완벽’은 소동파가 추구한 자유로운 예술세계인 ‘상의(尙意)’를 표현한 ‘파두(坡肚)’와 추사 김정희의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를 나타낸 ‘완벽(阮癖)’을 이어받아 검여 선생이 추구한 창출한 예술세계이다. 검여가 쓰러지기 전인 무신년(1968) 봄에 인권변호사이며 감사원장을 역임한 서실 사백 한승헌 변호사의 두 번째 시집 발간을 축하하며 써준 우수서(右手書; 오른손 글씨) 시기의 작품이다. 검여는 글귀하나에도 선배 예술가를 향한 숭앙(崇仰)의 마음과 후학을 향한 실천의 뜻을 담아 예술혼을 불태웠다. ‘추사 이후 최고의 명필’, ‘불굴의 예술혼’이라 불린 검여의 생애는 1968년 뇌일혈로 쓰러져 오른손이 마비된 이후에도, ‘좌수서(左手書; 왼손 글씨)’로 34미터 필생의 역작 <관서악부>를 탄생시킬 만큼 한편의 극적인 일화를 남겼다. 성균관대박물관은 유족분들의 무상기증을 통해 200여 년 전 신광수와 강세황을 필두로 한 풍류문학을 재조명했고, 이번 전시에서는 1,000년을 가로지른 시공의 대서사시를 엮어내는 최고의 기회와 만나게 되었다. 기증받은 작품들은 공개되지 않은 습작 혹은 미완성작으로 치열한 예술혼이 깃든 검여 선생의 작품세계를 잘 표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검여 선생이 소장했던 소동파의 〈백수산불적사유기(白水山佛跡寺遊記)〉(1095)가 최초로 공개된다. 그밖에 완당의 작품과 함께 이를 계승한 검여 선생님의 문자향서권기가 베어 나오는 미공개 및 대표작들도 선보인다. 전인(全人) 예술의 가치를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로 재해석한 현대작가 남주 선화자, 상산 박영현, 신영훈, 신제현, 신학, 연당 지은숙, 이동환, 정연두, 조환 등의 서예·판화·동양화·설치·미디어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예술혼을 신화화시킨 감동적인 스토리는 예술혼을 이어받은 9명의 현대작가들을 통해 계승되었다. 검여가 소동파와 완당을 자신의 예술 안에서 구현했듯이, 오늘을 사는 작가들은 소동파·완당·검여를 다시금 요청함으로써 ‘소완재가 과거의 이름이 아닌 전하여 통하는[傳統] 미래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검여가 소동파와 완당을 깊이 이해하여 계승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듯이, 이들을 오마주한 9인의 작가들은 서예·한국화·판화·조각·미디어·퍼포먼스라는 오늘의 언어로 소완재를 재소환하였다. 검여가 쓰러지기 전인 1967년 《사상계》에 발표한 <완당론>이 오늘의 작가들에 의해 <검여론>으로 재편된 것이다. 우리는 검여를 소동파와 더불어 완당을 계승하고, 동서고금을 오늘에 되살려낸 천재이자 지적 유머를 갖춘 전인 예술가라고 평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문인정신의 가치 속에서 소동파와 완당을 계승·발전시키면서, 옛 것을 답습하기보다 존숭의 마음을 창조의 원형으로 삼고자 했다. 이는 전통과 첨단의 조화를 추구해온 성균관대학교의 건학이념이 갖는 가치와 맥을 함께 하며, 검여 선생님의 정신적 유산을 예술적 실천을 통해 이어가려는 의지를 담았다고 할 수 있다. (전시관람 문의 및 예약 ☎760-1216, 1322, 주말, 공휴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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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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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무(劍舞) - Black Wave 특별기증전 개최 (2019.5.31 ~ 2020.5.29)
- 1. 검여 「관서악부」 최초 상설 전시. 2. 총 34m, 3,024자에 이르는 검여 유희강의 대작 「관서악부」, 표암 강세황 「관서악부」 동시에 최초 공개 2. 우수 대표작 ‘완당정게(阮堂靜偈)’ ‘무량청정(無量淸淨)’ 등 공개 3. 우수 마지막 작, 좌수 마지막 작 최초 공개 4. [그림을 곁들인] 미공개 실험 작 30여 점 최초 공개 5. 유품, 서적 등 20여 점 자료 최초 공개 □ 성균관대박물관(관장 조환)은 현대 한국 서예를 대표하는 검여 유희강(劍如 柳熙綱, 1911∼1976)의 유족들(유환규, 유소영, 유신규)로부터 수 백점의 작품을 기증받아 《검무(劍舞) - Black Wave》라는 주제로 특별전시회를 5월 31일부터 개최한다. 검여 「관서악부」 최초 상설전시. <검여 관서악부실> 마련. 검여 「관서악부」와 표암 강세황 「관서악부」 동시에 볼 수 있는 기회 200년 시차를 넘어선 우정의 서사시 「관서악부」 □ 「관서악부(關西樂府)」는 1775년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 1712-1775)가 지은 서사시로,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관동별곡(關東別曲)」과 짝을 이루는 한문 문학의 정수(精髓)로 꼽히는 작품이다. 신광수는 1746년(영조22년) 과거시험에서 ‘등악양루탄관산융마(登岳陽樓歎關山戎馬)’라는 답안지를 제출해 합격했다. 이 글은 조선 후기 ‘관산융마(關山戎馬)’라고 불리며 전국적으로 애창한 노래가 되었고,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1720-1799)과 신광수는 어릴 때부터 교류를 이어온 절친한 친구였다. 채제공이 1774년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할 때 여러 문인들이 축하 모임을 열었고 시를 선물하였는데, 이때 신광수는 영릉에 봉향(奉香)을 하러 가 참석을 하지 못했다. 채제공은 이를 아쉬워하여 신광수에게 평양과 관련된 서사시를 요청했다. 신광수는 여러 번 평양을 여행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채제공이 평안도관찰사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을 기원하며 108수에 이르는 대작 「관서악부」 지었다. 신광수는 완성된 「관서악부」를 당시 최고의 명필로 불리던 친구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에게 보내 글로 옮겨 줄 것을 부탁했다. 강세황은 이것을 허락하고 「관서악부」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신광수가 사망하였고, 강세황은 친구 신광수의 뜻에 따라 글을 완성한 후 말미에 그 내역을 기록하여 아들에게 주었다. 이러한 「관서악부」 ‘원본’은 그 후손이 소장하고 있는데, 이번에 최초로 공개되어 연말까지 전시된다. 서예가 검여에게 「관서악부」는 인생의 변곡점을 이룬 작품이다. 검여는 필생의 역작(力作)으로 「관서악부」를 택하였다. 그리고 「관서악부」 108수 전 작을 세 번이나 다시 쓰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6개월에 걸친 대장정이 마감된 후, 그 동안의 소회를 밝히기 위해 발문을 짓고, 마음의 벗[心友] 청명(靑冥) 임창순(任昌淳, 1914-1999)에게 교정을 부탁했다. 하지만 뇌출혈증이 다시 발병하여 운명하였다. 끝을 마감 짓지 못한 「관서악부」의 발문은 임창순에 의해 마무리되었다. 이로써 현대 한국 서예사의 대작이 탄생하게 되었다. 「관서악부」는 조선 시가문학의 대표작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와 함께 신광수와 강세황의 우정을 상징하는 표암서 「관서악부」, 200년 후 유희강과 임창순의 우정이 어우러진 검여서 「관서악부」에는 이처럼 또 다른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검무(劍舞) - Black Wave》전은 「관서악부」를 통해 검여 유희강 선생의 불굴의 예술혼을 볼 수 있다. 또한 당대 최고의 문학가이며 서예가였던 신광수와 강세황, 유희강과 임창순의 우정과 예술정신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 詩境(시경) - 추사와 옹방강, 검여와 최순우 충남 예산 추사고택을 찾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화암사 뒷산 바위에 새겨진 ‘詩境(시경)’이라는 글귀를 찾는다. 추사 김정희는 17세 때 관직에서 물러난 조선 최고의 석학 박제가를 스승으로 모신다. 박제가는 중국의 최고 석학인 옹방강을 직접 만나 친분을 쌓았던 인물이다. 박제가가 운명하자 추사는 하염없이 그를 그리워했다. 추사의 아버지인 김노경은 추사에게 생원시에 합격할 경우, 북경에 함께 갈 것을 약속했다. 생원시에 합격한 추사는 아버지를 따라 수행원 자격으로 북경을 방문했다. 여기서 추사는 옹방강과 완원을 만난다. 옹방강은 추사에게 남송의 대표적인 시인이었던 육유(陸游, 1125-1210)의 예서체 글씨 ‘詩境(시경)’을 선물했다. 추사는 이를 가져와 고향집 뒷산 바위에 새겼다. 검여는 추사가 새긴 육유의 예서체 ‘詩境(시경)’을 전서(篆書)로 재해석하였고, 친분이 깊었던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인 최순우에게 선물했다. 검여 유족들이 기증한 작품 가운데에는 예서체, 전서체와는 다른 해서체의 습작이 발견되었다. 검여 선생이 쓴 해서체 ‘詩境(시경)’은 뚫어진 종이를 메운 재활용 종이에 간결하면서도 호방하게 정성을 들여 써내려간 인간 유희강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해서체의 글씨들은 경지에 오른 검여의 유연하면서도 날카롭고 자유분방한 글솜씨의 진수가 나타난 놀랍고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검여의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 - 만주(晩洲) 정창주(鄭昌胄)의 재발견 예나 지금이나 한자로 된 작품은 으레 이백과 두보, 백거이, 소식 등 중국의 명작이 주를 이룬다. 검여도 중국의 명작을 많이 썼지만, 한편으로 이제현, 이색, 정몽주, 김정희의 작품을 즐겨 인용하였다. 특히 만주(晩洲) 정창주에 주목했다. 오른손이 마비되어 왼손으로 글씨를 쓰게 된 이후에도 붓글씨는 거의 복구되었지만 펜으로 쓰는 글씨는 회복되지 않았다. 이러한 처지에서도 정창주의 시집에서 마음에 드는 시를 골라 사력을 다해 볼펜으로 한권 가득히 필사했다. 그리고 볼펜으로 필사한 작품들은 능란한 필치의 붓글씨로 재탄생했다. 검여 선생은 정창주가 9세 때 지었다는 ‘영설(詠雪)’[-눈을 노래하다-]에 주목했다. 이 시(詩)는 정창주가 따뜻한 봄날 산봉우리 가득 피어난 꽃들이 눈송이 날리듯 떨어지는 모습을 눈 내리는 풍경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검여는 붉은 종이에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고 손을 들어 좋아하는 아이를 그리고, 그 위에 정감 가득한 글씨로 감정을 표현했다. 검여는 1968년 뇌출혈증으로 인해 오른손 마비되었다. 하지만 이를 1년 만에 극복하였다. 그리고 동서양의 글씨와 그림을 조화시키기 위해, 형태, 모양, 재질 등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했다. 「영설」은 ‘좌수서(左手書)’시기 검여의 새로움을 향한 끝없는 지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 특징 있는 작품 1. 「연수(煙樹-안개 가득한 곳의 나무)」는 아득한 세계에 놓여진 나무를 칼날선 같은 글씨로 힘차게 표현했다. 검으로 춤을 추는 검무와 같이 긴장감 있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 2. 「제석파란(題石坡蘭)」은 추사 김정희의 ‘題石坡蘭卷(제석파란권)’에 실린 글에 바위와 난 그림을 곁들인 검여 ‘좌수서’ 절정기의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걸작이다. ‘웅장한 기세의 바위와 숨은 듯 드러나는 난[石坡深於蘭]’이 춤추듯 흐르는 글씨의 중간과 아래에 배치되어 글과 그림이 조화를 이루었다. 추사의 ‘不二禪蘭(불이선란)’과는 다른 검여의 독특한 예술세계가 나타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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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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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o Examicus – 시험형 인간(2018. 9. 14 ~ 12. 28)
- ‘Homo Examicus – 시험형 인간’ 기획전 개최 9월 14일(금) 오전 11시 오프닝 시험에 중독된 한국인의 모습 우리는 언제부터 ‘시험형 인간’이었던가? □ 성균관대학교 박물관(관장 조환)은 오는 14일(금)부터 ‘Homo Examicus – 시험형 인간’이라는 주제로 제37회 기획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대학졸업자의 절반 이상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현재 우리의 상황에서, 이 땅에서 치러진 시험을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조망하며, 어제를 살았고 오늘을 살며 내일을 살아나갈 우리에게 시험이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기획되었다. □ “인생이란 시험의 연속이다”라는 말처럼,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시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와 같은 존재이다. 입시를 위해, 취직을 위해, 그리고 자격증 취득 등을 위해 시험을 준비하는 우리의 모습은 그야말로 Homo Examicus, 즉 시험형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변화를 반영하여 전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시험을 ‘시험의 기원’, ‘과거의 시작’, ‘그들의 시험’, ‘모두의 시험’이라는 주제들로 나누어 구성했다. □ 우리나라에서 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행해진 시험의 역사는 전통시대에는 일부 계층을 위한 과거시험이 존재했다면, 근대 이후에는 시험이 대중화되고 확대되는 ‘모두의 시험’으로 변모했다. 이 전시에는 단원 김홍도가 과거장 풍경을 묘사한 ‘공원춘효도’에 그려진 거대한 우산을 고증하여 실물로 제작했다. 조선시대 과거의 수석 합격자의 복식인 앵삼, 복두, 어사화의 복식과 함께 영조 때의 그려진 오수채 초상을 바탕으로 흑단령을 제작했고, 정조가 과거합격자에게 독한 술을 마시게 했던 ‘팔환은배’도 재현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응시하는 것조차 특권층에게만 허락되었던 시험이 신분 상승과 출세의 지름길을 넘어 우리 모두의 일상이 되어 온 과정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주요 전시물로 조선 후기의 이색 풍경 ‘소과시험장의 우산’, 정조의 독주를 견딘 ‘오태증의 백패’, ‘개천의 용’ 사법고시의 추억 홍남순의 법복, 팔환은배八環銀杯, 삼鶯衫, 복두幅頭, 어사화御史花, 등이 있다. □ 18세 빈공과에 합격해 중국을 떠돌다 28세에 귀국한 최치원, 3번 낙방해 고민하다 이름까지 ‘합격’을 의미하는 ‘규성(奎星)’으로 이름을 바꾼 이규보(李奎報), 24세까지 3번을 낙방한 퇴계 이황 등등 너무나 오래전부터 ‘시험’은 우리에게 꿈과 희망이자, 넘기 힘든 고난이었다. □ 시험의 고통과 합격의 기쁨, 현재 우리에게도 시험은 영원한 과제이다. 성균관대 박물관은 역사속에 사라져 버린 시험과 관련된 유물을 철저한 고증을 거쳐 새롭게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2018년 9월 14일부터 12월 28일까지 약 3개월 간 계속된다. □ 전시물 추가설명 - 조선후기의 이색풍경 ‘소과시험장의 우산’ 전통시대부터 시험은 출세를 위한 가장 좋은 사다리였다. 근대 이후 모두에게 시험의 기회가 주어지자, 그 기반이 되는 교육에 대한 관심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한국의 교육열을 낳게 되었다. 그 부작용의 하나는 현재까지도 입시부정, 출제오류, 내신조작 등 시험과 관련한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반향이다. [소과시험장의 우산] 조선 후기 과거시험의 혼란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소과시험’이다. 정약용의 <경세유표>에 따르면 시험장에 수험생만 입장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팀’이 들어가 시험을 치렀다. 시험팀의 구성은 글을 지어주는 거벽(巨擘), 쓴 글을 정서해주는 사수(寫手)와 함께 작성된 답안지를 뛰어가 제출하는 수종(隨從), 이들이 시험장에서 함께 답안지를 작성하는데 필요한 돗자리, 우산 등을 옮겨 설치하는 노유(奴儒)와 시험장에서 좋은 자리를 잡고 제반 사항을 관리하는 선접(先接) 등이었다. 순조 초인 1809년 9월 16일 신현이라는 사람이 아들 신명호에게 소과시험 준비에 대해 당부한 서신이 있다. 이 편지는 시험장에 들어가서 관리하는 유능한 노유奴儒를 보내니 이들을 잘 대접하라는 당부의 내용이다. 또한 아들 신명호의 수험표인 조흘첩照訖帖과 함께 필요할 경우 대리시험을 치를 2명의 조흘첩도 보낸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명호는 낙방을 하고, 결국 음서로 관직을 받았다. 현재 김홍도가 그린 평생도 가운데 이러한 소과시험장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 국립중앙박물관에 1점 미국의 개인이 소장한 1점이 전한다. 특히 미국인 Patterson 소장 그림은 강세황이 ‘시험장의 아침(공원춘효貢院春曉)’라는 제명을 단 것으로 거대한 우산 아래에 거자(擧子, 수험생), 거벽(巨擘, 글 짓는 사람), 사수(寫手, 글씨 쓰는 사람), 수종(隨從, 답안지 제출), 노유(奴儒, 돗자리, 우산 등 설치), 선접(先接, 제반 사항을 관리)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는 성균관대 박물관이 소장한 일산대(日傘臺)와 김홍도의 ‘공원춘효도’를 바탕으로 32개의 우산살로 구성된 직경 3m의 우산을 고증 제작하였다. 이와 함께 수험생이 쓰고 있는 복건(幅巾)과 거벽(巨擘)이 쓰고 있는 유건(儒巾)도 고증 제작하여 전시한다. - 정조의 독주를 견딘 ‘오태증’ 정조에게 독주는 순탄치 않은 집권과정을 같이 한 벗이었다. 한편으로는 노회한 관료들에 대항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실제로 정조는 내각의 관료들과의 술자리를 위해 ‘팔환은배(八環銀杯, 팔각으로 두른 은배)’를 만들어, 여기에 70-80도에 이르는 독주인 삼중소주(三重燒酒)를 가득 부어 마시게 하면서, 불취무귀(不醉無歸) 즉 ‘취하지 않으면 집에 가지 못한다’고 하여 취할 때까지 마시게 했다. 오태증은 1792년 식년시에 급제해 2월 28일에 합격증을 받았다. [<정조실록>에 기록된 오태증의 백패] 이로부터 4일 후에 정조는 희정당으로 합격생들을 모아 시를 짓게 했다. 시를 지은 후, ‘내각용 팔환은배’ 큰 잔을 가져오게 해 5잔을 마시게 했다. 오태증을 제외한 다른 합격생들은 5잔을 다 마시지 못하고 쓰러져 별감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갔다. 정조는 오태증에게 다시 5잔을 마시게 했고, 이를 다 마신 오태증이 쓰러지자 집으로 보냈다. <오태증이 마신 술의 양은 삼중소주로는 2리터, 양주로는 약 6병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균관대 박물관은 <정조실록>에 기록된 오태증의 백패를 소장하고 있어, 이번 전시를 위해 팔환은배를 제작하고자 하였다. 우선 조선시대 잔의 형태, 크기와 용량을 검토하여 ‘팔환은배’를 고증하였다. 조선시대 큰 잔의 용량은 대채로 1홉이 좀 넘는 200-220CC 정도(소줏잔 4잔)이고, 팔각의 형태를 띤 모양의 순은제로 전통방식으로 정조가 제작한 내각용 팔환은배를 제작하였다. 또한 다산 정약용이 정조에게 불려가 마셨던 ‘옥필통’은 현존하는 몇몇 사례는 250CC(소줏잔 5잔) 내외이다. 정조는 과거합격 축하의 표시로 독주를 마시게 한 사실이 이채롭다. -‘개천의 용’ 사법고시의 추억 홍남순의 법복, 강병순은 일제강점기 ‘개천에서 용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상점점원, 정미소 사무원으로 일했다. 정미소에서 일하면서 독학으로 1930년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했고, 1933년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독지가의 도움으로 일본 주오대학에 입학했으며, 1938년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와 행정과에 동시에 합격했다. 홍남순은 1930 일본 와카야마(和歌山)시립상공학교 졸업했고, 1948년 제2회 조선변호사시험 합격하여 광주지방법원 판사와 광주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변호사가 된 인물이다. 그는 변호사를 개업한 인권변론에 투신했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시민학살에 항의하는 뜻으로 행진을 펼치다 내란죄 혐의로 무기징역을 받기도 했다. 이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 규명과 시민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이번 전시에는 그가 판사의 재직시절 착용했던 판사복과 변호사 시기에 입었던 변호사복이 최초로 공개된다. [홍남순 판사 법복] 이번 전시에는 최초의 여성변호사인 이태영이 1950년부터 1951년까지 고등고시 준비를 위해 10번 이상 통독한 민법책이 최초로 공개된다. 그는 책의 겉봉에 “집안자손들과 후배들에게. 永久히 보존하며 고시에 합격하기까지 할머니가 얼마나 고생스럽게 공부했나 참고하기 바란다.”는 글을 남겼다. 이 책은 당시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고등고시에 합격한 이태영 박사의 노력과 정열이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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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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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花王界, 찬란한 꽃들의 세계 (2017. 9. 22 ~ 12. 29)
- '花王界, 찬란한 꽃들의 세계' 우리 시대를 관통해 온 꽃의 문화사 고려불화에 표현된 버드나무 꽂힌 청자정병을 ‘프리저브드 플라워’로 재현 성균관대 박물관 제35회 기획전 9월 22일부터 12월 29일까지 전시 성균관대학교 박물관(관장 조환)은 오는 9월 22일(금)부터 ‘花王界, 찬란한 꽃들의 세계’라는 주제로 제35회 기획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삼국사기』 속 설총의 「화왕계(花王戒)」를 변주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 역사 속에서 화왕(花王)으로 칭해졌던 네 가지 꽃, 즉 모란, 연꽃, 매화, 장미들이 꽃 피운 세계(世界)를 형상화하고 이들을 매개로 추구해온 시대정신을 되새겨보자는 뜻으로 기획했다. □ 화왕에 깃든 꽃의 문화사 통상적으로 화왕(花王)이라면 모란(牧丹)만 떠올리기 쉽다. 모란은 전통시대 화왕으로 오랜 기간 군림해왔지만 우리 역사의 국면마다 고려시대의 연꽃, 조선시대의 매화 등 화왕의 위치에 버금가는 꽃들이 각 시대의 미감과 사상에 따라 존재해왔다. 현대에는 설총의 「화왕계(花王戒)」에서 아름다움 때문에 경계의 대상이 되었던 장미가 ‘모두의 꽃’으로 가장 사랑받고 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각 화왕이 지닌 품성에 주목해 모란은 ‘겸손함을 갖춘 왕의 꽃’, 연꽃은 ‘부활과 정화, 구원의 꽃’, 매화는 ‘혹한을 견디고 찾아오는 봄의 꽃’, 장미는 ‘모두의 꽃’이라는 소주제로 나누어 전시를 구성했다. 이를 통해 단순히 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우리 시대를 관통해 온 꽃의 시대사이자 문화사를 이해할 수 있다. □ 고려불화 속 버드나무 꽂힌 청자정병 모습을 최초 재현 이번 특별전에서 주목할 것은 박물관 소장 유물과 현대 작가들의 미술작품, 과거 유물과 현대 작품을 잇는 명인, 명장의 작업들로 재구성한 화왕의 세계다. 전통에 대한 재해석과 현대적 재현의 계승이라는 대목에 방점을 두었다. 전시된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에서는 연꽃 위에 앉아 정병을 들고 중생을 구원하는 관음보살의 세상을 볼 수 있다. 특히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속 버드나무 꽂힌 청자정병(靑瓷淨甁)은 프리저브드 플라워(Preserved Flower)의 형태로 ‘한국문화예술 명인 제16-21-02-07호 화예분과(프리저브드 디자인)’ 김은경 명인에게 의뢰해 재현했다. * 프리저브드 : 생화를 특수 보존 처리하여 1∼5년간 모습이 유지되는 가공화. 그밖에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李德懋)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62에 실린 윤회매를 볼 수 있다. 이것은 「윤회매십전(輪回梅十箋)」에 기초해 국가무형문화재 제124호(궁중채화장)황수로 장인이 만들었다. 윤회매(輪回梅, 국립무형유산원 소장)는 기록으로만 남아 있던 조선 사대부의 매화 향유 전통을 복원한 것이다. *윤회매 : 매화진(밀납)으로 매화꽃을 만들어 오래 볼수 있게 만든 것. □ 도자에 핀 꽃 성균관대 박물관은 그동안 수집한 청자와 분청자, 그리고 백자 유물 중에서 꽃이 시문된 대표작 10여점을 공개한다. 박물관은 수집한 대표작을 ㈜올챙이메이커스에 의뢰해 이야기가 있는 동영상으로 제작했다. 제작사는 연적 위 개구리가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깨어나 연꽃밭을 뛰어놀며 도자 속 연꽃문양을 연꽃으로 변화시키는 모습을 위트있게 표현했다. 이 미디어작품은 고려시대 청자 개구리장식 연잎모양 연적(靑瓷蛙裝飾蓮葉形硯滴), 청자음각연화문주자(靑瓷陰刻蓮花紋注子), 청자양각연판문접시(靑瓷陽刻蓮瓣紋接匙)를 활용해 만들고 ‘도자에 핀 꽃’이라 이름 지었다. □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신부의 혼례복, 활옷 붉은 비단 바탕에 부귀, 장수, 길복 등을 의미하는 모란, 연꽃, 물결 불로초, 봉황, 나비, 동자 등 여러 가지 화려한 문양의 자수가 가득 새겨진 활옷은 신부의 혼례복이다. 우리나라 전통 복식에서 가장 화려한 옷 중 하나로 꼽힌다. 이번 특별전에는 성균관대학교 의상학과 조우현 교수와 제자들이 만든 활옷 세 점이 교차 전시된다. 재현된 왕실 활옷은 순조의 차녀 복온공주(福溫公主, 1818~1832)가 1830년 13세때 가례에서 착용했던 것이다. 민간활옷은 광복 이후 기계자수로 제작됐다. 현대 활옷은 1990년대에 제작되어 왕실 활옷의 화려함과 민간 활옷의 소박함이 적절히 조화되어 제작방식에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활옷에 새긴 다양한 꽃들은 신랑 신부의 행복을 염원하고 이꽃에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미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 수묵채색화와 장미의 만남 현대의 화왕인 장미는 근대 이후 서양에서 왔고, 새롭게 형성된 서양화단에서 꽃정물화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70년대 동양화단에서 동양 전통의 수묵채색 기법으로 장미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 선구자는 동양화단의 ‘장미의 화가’로 불렸던 故 월전 장우성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동양화의 미감으로 재해석된 20세기 하이브리드 장미로 장우성의 장미(1977년作), 꽃다발(1980년作), 두 작품을 이천시립 월전 미술관에서 대여해 전시한다. 하이브리드 장미가 야생상태로 돌아간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낸 구지연 작가의 들장미 작품은 지금껏 그려진 바 없는 전통의 야생장미를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이외에도 화왕의 세계를 열어주는 신영훈 작가의 ‘모란/선덕여왕의 지혜’, ‘연꽃/심청의 부활’, ‘매화/광야에서’, ‘장미/설총의 화왕계’, 4개의 일러스트 작품과 김근중 작가의 ‘Natural Being(꽃세상. 原本自然圖)’ 연작, 본교 공성훈 교수의 ‘청와대, 국회의사당 그리고 연꽃’, 조환 관장의 ‘모란’, ‘매화’ 작품들은 현대 작가들이 마주한 화왕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 꽃길만 걷자 2017년 현재 대한민국 사회 한편에서 순탄하고 순조롭게 좋은 일만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꽃길만 걷자’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 같은 2017년의 바람을 담아 역사적, 예술적으로 찬란한 꽃들의 세계를 다루면서 앞으로 꽃피울 세상의 희망을 담고자 했다.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내외부를 꽃 작품 사진으로 가득 채워 관람객들을 찬란한 꽃들의 세계로 맞이하고 있다. 개막식은 9월 22일(금) 오전 11시 600주년 기념관 지하 박물관에서 개최한다. 전시는 2017년 9월 22일부터 12월 29일까지 약 3개월 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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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7-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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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 맞서다 (2016.10.05 ~ 12.27)
- 성균관대 박물관 '얼굴, 맞서다'전 개최 우리 시대의 진정한 리더는 어떠한 인물일까?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얼굴, 맞서다’전에서 롤모델의 리더 제시 □ 성균관대학교(총장 정규상) 박물관은 오는 10월 5일(수)부터 ‘얼굴, 맞서다’라는 주제로 제34회 기획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진정한 리더의 부재라는 현시대의 상황을 생각하여 ‘2016년 현재 리더의 롤모델’을 모색하고자 기획되었다. 이 전시에서 염두에 두는 리더는 지배적으로 군림하는 자가 아닌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집단의 등대 같았던 인물을 말한다. 따라서 이회영, 김구, 신채호, 백남준 등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지도자를 아우르는 폭넓은 리더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전시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 백범 김구, 몽양 여운형의 데스마스크가 한 자리에 이번 전시에서는 백범 김구와 몽양 여운형의 데스마스크를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데스마스크는 인물이 사망한 직후 석고 등의 재료를 사용해 얼굴의 본을 그대로 떠서 만든 안면상(顔面像)으로, 고인의 생전 모습을 생생히 기록한 유물이다. 이번 전시는 책으로만 접해왔던 우리나라의 대표적 위인인 백범과 몽양의 얼굴을 함께 비교하며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 심산 김창숙, 단재 신채호 유물 최초 공개 일반에 최초 공개하는 유물들 또한 눈길을 끈다. 심산 김창숙의 미공개 편지(간찰) 2점과 단재 신채호의 『무애산고(無涯散稿)』, 『동국거걸최도통전(東國巨傑崔都統傳)』 필사본이 바로 그것이다. 심산의 편지 2점은 각각 21세(1899), 26세(1904)에 쓰인 것으로 심산의 초년 모습과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단재의 저작 모음집인 『무애산고(無涯散稿)』는 1915년 제작되었으며, 일제강점기 초기 신채호의 저작들은 금서(禁書)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안동지역에서 몰래 등사판으로 제작해 교재로 사용하거나 돌려봤던 도서 중 하나로 추정된다. 또 다른 저작 『동국거걸최도통전(東國巨傑崔都統傳)』 필사본은 고려장군 최영의 전기로, 대한매일신보에 1909년 12월 5일부터 1910년 5월 27일까지 연재된 것을 필사했다. 이는 신채호의 중국 망명, 대한매일신보의 친일기관지화 등으로 인해 완결을 보지 못하고 상편 연재로 마감되었다. 심산의 편지와 단재의 저작 모두 이번 전시를 통해 일반에 실물로 최초 공개되며, 관련 연구자들의 연구에도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이 시대 ‘인물화’ 대표작가 망라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신-구세대를 아우른 이 시대의 대표 작가 이철주, 황재형, 공성훈, 신영훈 등 13인이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진정한 리더라고 부를 수 있는 10인의 인물을 재해석 해낸 작품들이다. 이를 위해 박물관의 전문 학예 인력들이 반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인물 조사 및 고증에 매달렸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한 작가들의 신작이 일반에 전시되는 것이다. 일반 미술전시에서는 인물에 대한 나열식 전시를 주로 보여준다면, 박물관에서의 미술전시는 인물과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통해 각 인물에 맞는 정체성을 새롭게 구현하고 부여한다는 점이 다르다. 조환 관장은 이 전시에 대해 “감상자들에게 인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여 전시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는 동시에 그들 나름의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박물관에서의 미술전시가 가진 장점”이라고 말했다. □ 우리가 바라는 리더는 누구인가? 이번 ‘얼굴, 맞서다’展은 지금은 잊혀진 과거의 인물들을 오늘의 리더로 새롭게 요청하였으며, 관람객들은 그들의 얼굴에 담긴 삶을 좇으며 각자가 생각하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양방향의 소통을 꿈꾼다. 또한 이번 전시는 관람객들이 박물관 속의 작은 미술관을 탐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대학 박물관의 전시가 가진 한계를 넓혀가는 새로운 시도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전시는 2016년 10월 5일부터 12월 27일까지 약 3개월 간 계속된다. 문의번호 : 02-760-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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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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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시간, 식민지의 삶 (2015.8.28~12.28)
- ‘나도 안중근 의사’가 되다. 트릭아트가 박물관으로 .... - 성균관대 박물관 광복70주년 기념전 ‘잃어버린 시간, 식민지의 삶’展 성균관대학교 박물관(관장 : 이준식)은 오는 28일(금)부터 ‘잃어버린 시간, 식민지의 삶’이라는 주제의 기획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올해로 70주년을 맞은 광복의 의미를 기리면서, 36년간의 혹독한 일제강점기를 견뎌낸 우리 민족의 삶과 정신을 되새겨보고자 하는 뜻으로 기획되었다. 특히 기존의 광복70주년 행사들이 주로 해방 이후의 시간에만 주목했다면, 이번 전시는 해방이 있기까지 한반도에서의 시간들을 전체적으로 조망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나도 안중근 의사’ ‘해방의 환희 속으로’ 등 트릭아트를 통한 체험 기회 제공 박물관은 이번 전시를 단순히 식민지에서의 암울한 상황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볼거리와 더불어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는 코너를 마련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전시의 시작과 끝 부분에 트릭아트를 배치한 것이 대표적이다. 전시 전반부의 트릭아트는 달리는 철마(鐵馬)와 같았던 일제의 압력에 저항하는 민중을 형상화하였고, 관람객이 직접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안중근 의사가 되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 후반부에는 태극기를 들고 앞으로 진격하는 사람들을 표현한 트릭아트를 배치하여, 관람객이 해방과 자유의 기분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꾸몄다. 일제강점기를 견뎌낸 민족의 삶과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기회 한편 36년간 우리 민족을 억압했던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을 폭로하는 유물들과 함께, 이에 끊임없이 저항했던 여러 독립운동가들의 유묵(遺墨)도 이번 전시를 통해 공개된다. 민족과 나라를 팔아넘긴 친일파의 흔적은 물론, 일제 통치의 폭력적 실상을 상징하는 총과 칼, 그리고 통치의 선전도구로 기능했던 『경성일보』와 관련된 유물들은 우리 민족의 아픈 시간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제강점기 동안 임시정부 등을 통해 독립운동을 펼쳐 나갔던 김구·조소앙 등의 글귀에서는 조국독립을 향한 굳은 의지와 절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시간을 잃어버린, 아팠던 36년 식민지의 삶 또한 이번 전시는 일제강점기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도 굵직한 테마 중 하나로 다루고 있다. 조선 관광에 관한 팜플렛과 조선을 여성으로 형상화한 일제의 시각매체들에서 냉혹한 제국의 시선과 마주칠 수 있다. 특히 1930년대 이후 일제가 대륙진출의 야욕과 함께 전쟁을 일으키면서부터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된 조선인들의 삶의 모습도 여러 유물들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전쟁을 홍보했던 <성전미술전> 도록, 전쟁물자를 위해 공출된 그릇들, 일제에 충성을 강요했던 <황국신민의 서사>, 그리고 그 아래서 죽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전사자를 위한 위패 등 민족의 아픔이 서려있는 삶의 흔적들이 전시되어 해방 이전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일제의 강요로 뒤틀리고 왜곡되어진 문화 한편 이번 전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고유의 문화가 어떻게 변화하고 또 왜곡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화투(花鬪)나 일종의 부르마블과 같은 놀이인 쌍육(双六) 등 일제의 놀이거리가 침투해 온 모습이 있는가 하면, 그 와중에도 승경도(陞卿圖)놀이나 팔목(八目)과 같은 전통적인 놀이가 살아남았다. 또한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망자(亡者)의 혼을 위로하고 지켜주기 위해 상여(喪輿)를 장식하는 데 사용했던 용수판과 꼭두에서도 일제 순사의 모습이나 기모노를 입은 여인 등을 형성화한 것들이 나타나,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광복 70주년 기념전이기도 하지만,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경술국치(1910년 8월 29일)을 잊지 않고 우리가 잃어버렸던 시간의 흔적들을 찾아보려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관람객들이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잃어버린 시간, 식민지의 삶’展을 통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시대의 삶의 편린들을 엮어보면서, 광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전시는 오는 28일 개막하여 12월 28일까지 3개월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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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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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취보다 푸른 백옥보다 맑은:명품도자100선(~12.24)
- 도자사(陶瓷史) 전반을 아우르는 ‘명품컬렉션’에 주목 성균관대학교 박물관(관장 이준식)이 ‘비취보다 푸른, 백옥보다 맑은-名品陶瓷 100選’이라는 주제로 지난 50년간 수집해온 고려·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청자와 분청자 그리고 백자 유물들을 공개한다. 오는 22일(월) 오전 11시 개막식을 시작으로 12월 22일까지 열리는 박물관 기획전에서는 100여종에 달하는 명품도자와 함께, 현존하는 최고·최대의 글씨라고 알려진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의 대자첩(大字帖)이 병풍형태로 재구성돼 최초 공개된다. 박물관은 지난 10년간 중점적으로 국내 최고의 도자 전문가인 윤용이 명지대학교 석좌교수의 자문을 얻어 한국 도자사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다양한 성격의 명품도자 수집에 박차를 가해왔다. 현재 박물관의 도자컬렉션은 문방사우·초상화 등의 조선시대 선비유물, 고문서·탁본 등과 더불어 대학이 자랑할 만한 대표 유물이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100여점의 도자기가 다양한 테마로 분류·전시되며, 지정문화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청자개구리형연적(靑磁蛙形硯滴)>, <상감청자국화문과형병(象嵌靑磁菊花文瓜形甁)>, <청화백자용문호(靑華白磁龍文壺)>, <백자청화‘제’명사각제기(白瓷靑畵祭銘四角祭器)>, <백자‘천지현황’명발(白瓷‘天地玄黃’銘鉢)>등이 공개된다. 13세기 제작된 <청자개구리형연적>은 작은 청개구리가 넓은 연잎 위에 솟은 수구(水口)를 잡고 있는 비색(翡色)시대의 절정을 이루는 상형(象形)청자다. 산화철 안료로 또렷한 눈동자를 표현해 생동감을 더하며, 유약·문양·형식 등으로 보아 유천리 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상감청자국화문과형병>은 참외모양의 몸체와 흑백상감의 국화절지문(菊花折枝紋)이 조화를 이루는 상감청자로 비색이 살아있는 드문 예에 속한다. 전북 부안 유천리 가마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며,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국보 114호 청자상감국화모란문과형병과 견줄만한 명품으로 평가된다. 왕실도자를 생산한 분원리 관요에서 제작된 <청화백자용문호>는 완벽한 기형과 선명한 문양표현을 갖춘 19세기 전반의 전형적인 용준(龍嶟)이다. 정조 재위 말엽인 1780~90년대의 작품인 <백자청화‘제’명사각제기>는 사각형 윗면과 안상(眼象)이 투각된 받침을 지녀 큼직하고 잘생긴 명품(名品)으로 꼽히며, 담청을 머금은 청백색의 유색과 선명한 ‘제(祭)’자가 잘 어우러진 왕실용 제기이다. ‘천(天)’ ‘현(玄)’ ‘황(黃)’이란 글자가 음각으로 들어가 있는 <백자‘천지현황’명발>은 󰡔천자문(千字文)󰡕의 글자에 맞추어 이름을 붙였던 궁궐 창고, 또는 제작순서 등 당시 관요의 운영체계에 따라 제작된 것이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중반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地)’가 빠진 것이 아쉬우나 천지현황(天地玄黃) 한 세트가 거의 온전히 갖추어진 예로 주목된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대학박물관답게 도자역사 전반을 아우르는 탄탄한 전시구성과 교육효과에 있다. 이 기획전에서는 ‘청자-분청자-백자’로 이어지는 한국도자사의 발전과정을 시기·형태·주제에 따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교육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청화백자의 전시구성을 ‘백자, 산수를 품다’, ‘백자, 염원을 담다’, ‘백자, 낭만을 입다’로 나누어 조선후기에 담긴 풍류정신을 스토리텔링화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또한 조선시대 유교를 대표하는 제례와 선비문화를 ‘제기(祭器)’와 ‘문방구’로 나누어 ‘명품 속 작은 전시’로 꾸몄다. 도자 제기들과 함께 공개되는 청동제기는 성균관 문묘제사[釋奠]에서 실제로 사용되던 것으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이다. 청자에서는 생성-발전-소멸의 과정을 통해 비색청자 및 상감청자시대를 아우르는 화려한 미감과, 분청자에서는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시문기법을 통해 자유분방한 문양에 담긴 시대의식과 만날 수 있다. 백자는 조선 전기 분청자의 유행 속에서도, 경기도 광주일대에 관영도자기공장인 ‘분원(分院)’이 만들어져 ‘어기(御器)’로 사용할 만큼 고품질의 명품자기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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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5-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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